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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짧은 글] 용필남 사태가 알려주는 것들

by invrtd.h 2023. 7. 23.

 판사님 저는 용필남이 무엇의 줄임말인지 얘기 안 했습니다.

 

 1. 극단주의 유튜버들의 구독자는 생각보다 유튜버에게 충성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용'의 유튜브 구독자 수가 날아가고 있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내가 한 4년 전쯤인가 자기계발 유튜버들을 계속 보면서 느꼈던 게 하나 있는데(그때는 내가 고3이었고, 유튜브 자기계발 유튜브의 현실을 잘 몰라서 가능한 일이었음) 유튜버들이 설명하는 내용들 중에서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게 하나 있다고 하더라도 바로 구독을 취소하지는 않는다. 무언가 잘못 설명하는 내용들이 계속 쌓이고 쌓여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에야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구독해서 얻는 이익이 잘못된 정보를 받음으로써 얻는 손해보다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3 때의 나처럼 행동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면 유튜버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다. 이런 사람들이 팬층(이걸 팬층이라 부를 수 있다면)의 가장 바닥을 형성하고, 그 위로 멤버십 가입자들, 그 위로 오프라인 모임 참가자들... 이런 식으로 피라미드 형태의 팬층이 형성된다. 팬층의 밑바닥은 종종 과소평가된다. 그들이 있어야 그들로부터 멤버십 가입자들이 태어나고, 멤버십 가입자들이 있어야 그들로부터 오프라인 모임 참가자들이 태어나는 것인데... 이 구조는 자기계발 유튜버뿐만 아니라 여느 유튜버 팬층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겠지만, 자기계발 유튜버 팬층은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월 10만 원씩을 유튜버에게 갖다바치기도 하므로 유튜버는 꼭대기에 있는 사람만을 유독 편애하게 된다. 실제로 '남'은 2019년보다 지금 훨씬 더 입문이 힘든 헤비한 컨텐츠를 생산하고 있으니까.

 안타깝게도 스타의 세계는 험난해서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게 쉽게 대체될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남'은 자기 컨텐츠를 조던 피터슨에서 앤드류 테이트로 상당 부분 대체했다. 즉 팬층 유입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면 잘못을 하든 안 하든 팬층 이탈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이므로 서서히 말라죽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여기까지가 '용필남'이 계속해서 최악의 대처를 하는 이유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이었는데,

 사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내가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런 '어정쩡한 팬층'의 존재가 사회적으로는 좋냐 나쁘냐의 문제다.

 

 2. 메신저가 아니라 메시지에 집중하는 현상은 생각보다 나쁠 수 있다

 '어정쩡한 팬층'의 존재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을 하나 소개하고 싶다. 바로 다른 블로그의 조던 피터슨이 사기꾼인 이유라는 게시글에 달린 500+개의 댓글이다. 해당 블로그 게시글은 조던 피터슨이 현대 철학의 절반이 가짜라고 매도하는 사기꾼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나는 원래부터 안티 조던 피터슨이었으므로 블로그 주인장의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조던 피터슨에 호감이 있었던 사람들 중 몇몇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하기도 했다.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생각보다 큰 문제가 있었군요. 근데 나는 피터슨이 주는 통찰(주로 개인적 성공에 대한)이 더 중요해서 이 사람을 계속 좋아할 거임."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페미 척결은 필요하잖음? 그래서 이 사람을 계속 좋아할 거임."

 이런 태도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차치하고, 이 사람들의 태도는 내가 '팬층의 밑바닥'에 속해 있었을 때 보인 행동과 상당히 유사하다. 메신저를 불신하되 메시지는 일단 집중해서 듣는. 안타까운 것은, 앞에서 '어정쩡한 팬층'이 정말 중요했다고 설명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메시지를 듣는 행위 자체가 메신저에게 힘이 되어 준다는 점이다. 이것은 유튜브 알고리즘 시대에 특히 더 그런데, 유튜브 알고리즘이 만든 커뮤니티에서는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는 행위 자체가 동의의 표시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개인은 "좋아요"와 "싫어요" 표현으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상대적으로 박탈당한다.

 이로 인해 내가 걱정하는 문제상황이 하나가 있는데, 메신저가 죽더라도 메시지는 호크룩스처럼 살아남는 현상이다.

 

 3. 용필남 사태를 막을 수는 없었을까?

 "용"은 유사과학 메시지들의 집합이었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대충 그렇게 identify하도록 하자...) 용필남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나를 암 걸리게 하는 반응이 하나 있었는데, "끌어당김의 법칙은 좋은 법칙인데 얘 때문에 끌어당김의 법칙이 개무시당하게 생겼다" 같은 반응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유사과학이며 개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개인이 좋더라고 느끼더라도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앞서 메시지를 듣는 행위 자체가 메신저에게 힘이 되어 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위의 반응 또한 유사과학을 긍정하는 반응이므로 유사과학 메시지들의 집합인 메신저에게 어떻게든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예를 들면 "용"의 구독을 취소하려고 했던 다른 한 사람이 저 말 때문에 "용"과의 동맹(?)을 잠시만 연장하기로 하고 구독 취소를 취소한다던가... 지금은 도저히 동맹(?)이 불가능할 정도로 악담이 많이 쌓여서 그럴 일은 별로 없겠지만.

 "용"이 우울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것은 그가 유사과학 메시지들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주장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해보면 앤드류 테이트에게서 왔다. 그렇다면 앤드류 테이트 역시 우울증은 없다는 발언을 했을 때 "용"과 같은 정도의 역풍을 맞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용"이 우울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뉴스를 퍼나르지, 앤드류 테이트가 우울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뉴스를 퍼나르지는 않을까? 

 흑자헬스는 "용"의 우울증 발언을 비판할 때 그 발언이 앤드류 테이트에게서 왔다는 것도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앤드류 테이트랑 너랑 같냐?" 이것은 방금 전에 말한 "메신저가 아니라 메시지에 집중하는 현상"의 정반대 같아 보이지만, 취사선택을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나름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여튼 앤드류 테이트의 "우울증은 없다"는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보다 훨씬 완곡한 뜻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에서 지적하는 것은 바로 그런 태도의 위험성이다.

 잘 생각해보면 "우울증은 없다"는 명제와 끌어당김의 법칙은 나름 연관성이 있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생각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주장하고 우울증은 없다는 명제는 생각만으로 우울을 치료할 수 있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즉 두 개의 유사과학 메시지가 모두 "용"에게 달라붙은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명제 모두 실제보다 훨씬 완곡한 뜻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양자역학을 포함한 과학을 멋대로 편집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타락한 법칙이지만, 자기 돌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그리고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가정하는 우주의 기운 같은 것은 하나도 안 믿지만 그냥 믿고 싶어서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는 안 됐다.

 만약 우리가 용필남 사태를 막고 싶었다면 우리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처음부터 거부했었어야 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개인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끌어당김의 법칙 전체를 거절할 수 있는 단호한 용기가 있었어야 했다. 사실은 그렇게 하는 것이 개인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도 않을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끌어당김의 법칙의 수많은 대체재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나 사회는 끌어당김의 법칙의 위험성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랬으므로 생각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는 끊임없이 살아남았다. 그 중 일부가 우연히 앤드류 테이트나 "용"에게 붙어 우울증은 없다는 망언을, 생각만으로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망언을 만들어냈다. 이제 이 망언은 우울증을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4. 그러므로 이 문제는 생각보다 거대한 문제임

 아들러 심리학 중 목적론을 생각해 보자. 이 심리학은 트라우마를 부정한다. 생각만으로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응? 어디서 많이 봤던 것 같은데? 그렇다. 우리는 아들러의 목적론 또한 전체를 거절할 수 있는 단호한 용기가 있었어야 했다. 트라우마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오늘날, 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아들러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겠지~~" 하면서 끊임없이 메시지를 취사선택한다. (10/7 수정) 샤발 기시미 이치로가 왜곡한 거였네~~ 진짜 사기꾼들로 넘쳐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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