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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5, [민트초코 프라페] 기계로 얇게 갈아 만든 파랑을 씹는다 잘근잘근 다리를 떨고 애플펜슬로 낙서를 하고 오도방정을 다 하면서 세상이 그렇지 않니 뭘 구분하는 데는 두 가지 색이면 충분해 민트색 아님 초코색이다 이거지 금방 몸에 녹아버리는 설렘 뭔가 입에서 부서질 때만 나오는 세상 젤 예쁜 폭발 아 힘겹다아 민트초코에 내가 녹아버리고 싶을 만큼 요거트 위에 강원에서 산지직송한 날것의 과육 넌 씹는다 잘근잘근 난 빨강과 하양에서 민트와 초코를 찾지 생각이 넘 많아 흘러 넘쳐버리겠어어어서 당신 행복해 보여 딸기는 딸기 케이크 그리고 딸기 바나나 딸기 와플 아님 딸기 아이스크림까지 어딜 가도 그리 아픈 맛은 아닐 것 같아서 하늘을 봐 민트색 배경에 초코 색 구름 또는 딸기 색 별에 요거트 색 안개 색이 많단 건 알아 민트랑 초코 말.. 2024. 1. 1.
[재귀함수가 뭔가요?] 독일의 사업가 R씨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여러분, 우리는 더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모든 일을 해결해줄 테니까요. 모든 직업은 없어지고, 인공지능에 넣을 데이터를 정제하는 직업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그 직업도 사라지고 말겠죠. 인공지능에 넣을 데이터를 정제하는 인공지능이 나타날 테니까요. 모든 인류는 인공지능에 넣을 데이터를 정제하는 인공지능에 넣을 데이터를 정제하는 직업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끝끝내 그 직업까지도 먹어버릴 것입니다! 인공지능에 넣을 데이터를 정제하는 인공지능에 넣을 데이터를 정제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나서는 말입니다. 결국 우리는 인공지능에 넣을 데이터를 정제하는 인공지능에 넣을 데이터를 정제하는 인공지능에 넣을 데이터를 정제하는 직업을.. 2023. 11. 10.
230421, [아무래도 나르시시즘의 시대] 그러니까 글쎄 내가 오늘 뭘 봤냐면, 대학생따리가 30만 원은 돼 보이는 옷을 입고 등교하는 걸 봄. 대학생따리가. 자기 분수(magnetic fountain)에 맞는 삶을 살아야지 아무래도. 예, 보시는 것처럼 요즘 대학가에는 자신의 수준도 모르고 과소비를 즐기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요, 이처럼 노답 인생을 살고 있는 한 대학생 단체가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단체는 한 대학교에 설립된 동아리로,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는 ‘기부’ 문화를 실행하는 동아리라고 합니다. ‘기부’는 영어 단어 ‘give’에서 온 말로 사회적 약자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나눠준다(give)는 뜻인데요, 이처럼 이들이 문화 사대주의에 빠지며 자신의 노동력을 낭비하는 이유는 대학생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는 나르시시.. 2023. 10. 6.
230105, [배추(背秋)] 그날도 여전히 눈은 눈부시게 오고 바람은 새파라지게 불고, 난 새해가 왔는데도 아직도 헌해를 묻지 못해서, 찌질해보이더라도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되는 걸 뭐 어쩌겠어요. 그리고 내가 망가져있을때면 넌 말하곤 했지-그거 알아 불가능은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래, 그런 널 보고 내 맘은 다시 배춧잎처럼 구겨졌겠지만 넌 역시 그냥저냥하겠지. 난 언제나 너에게 내 모든 것을 비춰주는 투명망토 같은 인간이었으니까(그래, 해리포터의 속마음을 읽는 사람은 많아도 누가 투명망토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겠냐고?), 하지만 뭐 어쩌겠어, 우린 그냥 다른 거야. 내가 생각하고 생각하는 동안 넌 아직도 그 토익 문제집을 풀고 있잖아, 배추 세는 듯한 소리를 내며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렇담 너는 관짝에 묻힐 때까지 언제까지나 그렇.. 2023. 9. 10.
220901, [분할-정복]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 빈 화면을 아무것도 없는 곳을 응시하면서, 그저 언젠가 무언가가 손에 잡히기를 기다리며, 한가득 쌓인 문제상황들을 모두 체스터 속에 썰어넣어버리고 남은 것들도 다 냉장고에 소분해서 넣은 뒤 나는 행복합니다 행복합니다 외치면 행복해질까 사랑스런 것은 책상 맨 앞에 보기 싫은 것은 쓰레기통에 그거면 다인 걸까 그저 없다고 믿으면 지워지는-인생은 그런 것일까 날마다 회신할 수 없는 부류의 우편을 받는다 수능 성적표, 친구 소유의 6년 된 연애편지, 타지의 인생네컷에서 찍은 사진 내가 그것들을 보기 싫다면, 영영 못 보도록 치워 놓을 수 있을까 사랑스런 것은 책상 맨 앞에 보기 싫은 것은 쓰레기통에 사랑스러운 것과 혐오스러운 것 사랑스러운 사랑과 혐오스러운 혐오 사랑스러운 혐.. 2023. 9. 9.
(뻘글) 시집 시 한줄해석 적어 봄 시는 30분 만에 휘갈기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시를 많이 쓴다고 해도 결국 실제 좋아하는 사람과 나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그 무기력함에 대한 시다. 실제로 30분 만에 썼다. 여섯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지구멸망의 평범성에 대한 시다. 사람들은 일상 속의 오브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을 상징하는지 잘 모르더라. 설레는 사랑시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썼다. 나르시시스트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아서(...) 이 세상이 나르시시스트가 주장하는 자기 중심의 아름다운 세계관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재귀함수가 뭔가요? 인공지능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인공지능의 능력을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사람들의 자기모순에 대해 썼다. 사랑에 사랑을 더.. 2023. 7. 18.
시집 [하늘에서 떨어지는 1, 2, ..., R-L+1개의 별]을 GitHub에서 즐기세요! https://github.com/invrtd-h/1-2-...-R-L-1-Stars-Falling-from-the-Sky GitHub - invrtd-h/1-2-...-R-L-1-Stars-Falling-from-the-Sky: 시집 [하늘에서 떨어지는 1, 2, ..., R-L+1개의 별]의 PDF 시집 [하늘에서 떨어지는 1, 2, ..., R-L+1개의 별]의 PDF 파일. Contribute to invrtd-h/1-2-...-R-L-1-Stars-Falling-from-the-Sky development by creating an account on GitHub. github.com ㅈㄱㄴ 2023. 5. 22.
230518, [예쁜 것들의 신] 김파랑 씨는 마법진 연구에 몰두했다. 김파랑 씨의 스승은 말했다. 명심해 진을 좆 같이 그려도 베이비 드래곤은 튀어나오지만 그건 우리가 원하는 답이 아니야. 마법진을 예쁘게 그려야 해.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육망성과 카디오이드와 정십칠각형 등이 머릿속을 헤집고 튀어버린다. 별빛을 봐도 네 생각이 나서, 김파랑 씨는 자신이 설레버렸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숨을 들이키면 한 번에 네가 스며들고, 한 번에 네가 습관이 되고, 한 번에 그렇게 녹슬어가는 것. 김파랑 씨는 마법진 연구에 몰두했다. 김파랑 씨는 수천 개의 삼각형과 사각형, 수백 개의 테서랙트의 평면 위로의 정사영 등을 그렸다. 허리가 굽고 손이 떨린다. 천재 마법사였던 김망고 씨의 저서 [추상마법진 입문]에는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다- 인간이 태생.. 2023. 5. 22.
221015, [사랑에 사랑을 더하면 팔랑] 아직도 네가 날 노려다보며 내 심장에 주사를 들이대는 듯해. 거칠게 찔려도 더는 아파하지 않는 척하는 어른처럼 나는 순순히 내 피를 내어줄 듯해. 다리는 떨리고. 세상은 어지럽고. 따갑게 부드러운 향은 잔인하게도 내 감정을 흔들어대는. 아직도 너는 프리즘을 깨부술 때 튀어나올 마지막 빛깔같이 예쁘고, 네가 나에게 던지는 의미없는 낱말들의 연속에 내 피부는 파란색으로 물들어가는데.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숨기고 다닐 수 있는, 남들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으로 일상을 살 때면 때때로 칵테일 한 잔에 다 녹여내버리고 싶은. 그리고 하루의 마지막에, 완전한 어둠(또는 완전한 빛) 속에서 샤워할 때면 그제야 새어나오는 파란색 자국 말야. 벚꽃이 팔랑 하고 떨어질 때면 너는 벚꽃이 예쁘냐고 네가 예쁘냐고 물어봐. 내가.. 2023. 1. 19.
[220911] 저주하는 인연들을 위해 있잖아, 난 카카오톡 차단 버튼이 왜 이렇게 불친절한 곳에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어, 친구 목록에서 그 사람을 일일이 찾아서 제거해야 한다는 게 너무 비효율적으로 느껴져, 왜 그 사람 프로필 바로 옆에 차단 버튼을 박아놓지 않는 거야? 그리고 차단 해제는 왜 그렇게 쉬운 일인지도 모르겠어, 무릇 차단이란, 그리움을 차단하고 순수함을 지키는 훌륭한 발명품 아냐? 근데 차단 해제가 이렇게 쉽다는 게 윤리적으로 말이나 되는 거냐고, 이게 다 카카오톡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지금 온 세상에 전 남친들의 ‘자니?’가 넘쳐흐르고 있는 거잖아, 왜 차단 해제 버튼에는 지문 인식과 20자 이상의 비밀번호와 ‘로봇이 아닙니다’와 100자리 수의 소인수분해 문제 등이 적용되어 있지 않지? 떠나갈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 2022.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