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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여성이라는 난제 : 얄팍한 성기를 넘어선 범주를 상상하기>를 읽음

by invrtd.h 2023. 2. 19.

https://view.pong.pub/17

 

여성이라는 난제 : 얄팍한 성기를 넘어선 범주를 상상하기

지난 6월 3일에서 13일까지의 아주 짧은 기간, 김현주의 이라는 전시는 여성과 사회인으로서 느낀 곤란을 점묘 드로잉을 통해 그려내고 있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한 작업 당 6개월에서 2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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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관심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4줄 요약:

  1. 남녀를 불문하고 각 진영에서 신본질주의가 퍼지는 것은 현재 젠더 담론의 큰 문제다
  2. 페미니즘과 결합한 어떤 종류의 신본질주의는 여성의 문제를 여성기의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자신의 잠재력을 스스로 제한한다
  3. 여성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여성과 별 관련 없어 보이는 문제들(ex. 노동자)에 대해서도 논해야 한다

 

 신본질주의라는 단어는 이 글에서 처음 들어보지만 이 글이 신본질주의라고 칭한 현상 자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들어본 바가 있다. 자주 인용되는 예시가 "동물세계에서 동성애가 관측된다." "그러므로 동성애는 동물들이나 하는 짓이다."로 흘러가는 추론이다. 조금 더 유한 버전으로는 "남녀는 애초에 뇌 구조가 다르다." "따라서 남녀는 소통할 수 없다." 이런 추론도 있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형태의 '대중적인' 본질주의의 문제점은 정보의 지나친 압축에 있다. 예를 들어 "남녀는 애초에 뇌 구조가 다르다."는 문장은 어느 정도 참이기는 하지만 정확히 어떻게 다른 건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이 문장은 같은 남자들끼리도 뇌 구조가 천지차이고 여자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 그리고 10% 정도 되는 남자의 뇌 구조는 오히려 여자에 가깝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는 사실을 생략한다. "동물세계에서 동성애가 관측된다."라는 문장도 마찬가지, 참이기는 하지만, 이 동성애가 도덕적 타락의 결과물이 아니라 엄연한 진화의 결과이고, 자신이 자손을 낳지는 않지만 형제의 번식을 도와줌으로써 유전자를 퍼뜨리는 번식 전략을 세웠다는(다만 이 부분은 아직 가설일 뿐이다) 사실을 생략한다.

 

 다만 조금 더 역사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본질주의의 폐해로 백인주의 나치즘 정복주의 제국주의 어쩌고 저쩌고 하는 옛 흑역사들이 잔뜩 쏟아져 나올 것이다. 게다가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본질을 따라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본질주의를 따른다면, 인간의 본질은 어차피 수렵 채집하는 원시인이었으니까 그냥 다 집어던지고 정글에 들어가서 살면 안 될까? 인간 문명은 원래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점차 극복해 나가며 발전했던 것 같다.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는 신본질주의의 폐해 중 하나이다. 그들은 "여성의 본질은 여성기다"라는 전제를 깔기 때문에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역시 본질은 극복될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여성의 본질을 여성기로 제한함으로써 논의가 얄팍해진다고 했는데, 이런 사례가 또 주변에서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다가 2021년 알페스 논란을 떠올렸다. 당시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이 사건을 옹호하면서 남자들의 분노를 일으켰는데, 아마 그들은 여성의 본질은 여성기니까 남성기가 달려 있는 그 피해자들에게 별로 관심을 안 가져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더욱 교묘한 신본질주의는 (...) ‘매너 있는 남성’들에 의해 발휘된다. 전통적으로 여자는 차별받았으며, 억압되었었다고 기꺼이 말하는 남성들. (...) 그들이 받아들인 만큼의 문제만 문제가 된다. 그들이 보기에 세계의 문제는 문제로 여겨진 그만큼만 해결된다면 전부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 “우리 어머니 시절에는 겸상도 못했고, 제사도 전담했으며 가사 노동에 시달리고 너무 힘드셨겠지... 지금은 그런 거 없잖아?” 이때 차별은 은닉되고 현재의 조건이 산출하고 내재화하는 젠더 속성은 자연화된다.
 한편 신본질주의는 여성들의 측면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특히 터프(TERF,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들이 주장하는 왜곡된 급진성은(급진성은 너무 자주 오용된다.), 생물학적 여성만이 여성이라는 무근거한 본질을 정체성과 합치시키며, 트랜스 여성 또는 다양한 성차를 가진 성적 존재들의 차이를 외면한다. 

  여성 또한 산업예비군이 되고 맞벌이가 보편화되면서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감소하기 시작했다.(사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다.) 좁다란 취업문, 적은 임금, 실직의 위험, 사회안전망의 불안은 남녀를 막론하고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성기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여성적 문제의 조명을 요구한다. 꽤나 도발적인 제목을 여기서 해명할까 싶다. 성기를 통해 일어나는 문제들과 그것에 관한 논의들의 중요성은 결코 얄팍하지 않다. 그러나 여성 범주가 여성기에 한정된다면, 가능한 다른 모든 여성성의 논의를 부차적인 것으로 밀어낸다는 점에서 그것은 얄팍해진다.

 

  아마 도나 해러웨이를 비롯해 포스트모더니즘에 동조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분류에 공을 들이는 내가 여전히 서구-백인-로고스-부르주아-팔루스중심주의적 문제설정 안에서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도나 해러웨이를 비롯해 모두가 범하는 실수 역시 바로 이 부분이다. 왜? 왜 문제를 명료하게 식별하는 역능을 서구, 백인, 로고스, 부르주아, 팔루스적인 것이라고 윽박지르면서 넘겨주는가? (...) 그런 식별의 부재로 인해 생물학적 남성만을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하는 오류만은 피하고 싶다.

 

 두 번째 강조 표시된 부분에서 정말 감탄했다. "왜 문제를 명료하게 식별하는 역능을 서구, 백인, 로고스, 부르주아, 팔루스적인 것이라고 윽박지르면서 넘겨주는가?" 다만 내가 페미니즘의 역사를 잘 아는 게 아니라서, 그들이 왜 이런 분류를 "서구-백인-로고스-부르주아-팔루스중심주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할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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