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30518, [예쁜 것들의 신]

by invrtd.h 2023. 5. 22.

 김파랑 씨는 마법진 연구에 몰두했다.

 김파랑 씨의 스승은 말했다. 명심해 진을 좆 같이 그려도 베이비 드래곤은 튀어나오지만 그건 우리가 원하는 답이 아니야. 마법진을 예쁘게 그려야 해.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육망성과 카디오이드와 정십칠각형 등이 머릿속을 헤집고 튀어버린다. 별빛을 봐도 네 생각이 나서, 김파랑 씨는 자신이 설레버렸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숨을 들이키면 한 번에 네가 스며들고, 한 번에 네가 습관이 되고, 한 번에 <파랑아 요즘 왜케 달라졌어? 눈빛이 살아있는 것 같아.> <아 그런 것 같아요? 특별한 건 없는데.> 그렇게 녹슬어가는 것.

 

 김파랑 씨는 마법진 연구에 몰두했다.

 김파랑 씨는 수천 개의 삼각형과 사각형, 수백 개의 테서랙트의 평면 위로의 정사영 등을 그렸다. 허리가 굽고 손이 떨린다.

 천재 마법사였던 김망고 씨의 저서 [추상마법진 입문]에는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완벽한 삼각형을 그릴 수는 없다. 지면이 조금만 휘어 있어도 관측자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마법진을 본다. 그래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땅을 고르지만 인간은 땅을 고르면서도 어디가 높고 낮은지를 판별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진을 그린다. 마법진의 역사는 가장 예쁜 진을 향한 평생의 짝사랑의 역사다.

 -그건 김파랑 씨의 운명 같아서 그를 울게 했다.

 

 김파랑 씨는 마법진 연구에 몰두했다.

 김파랑 씨는 매일 저녁부터 새벽 다섯 시까지 새로운 도안을 설계하거나, 하나의 도안을 이백 번 고쳐 그리거나,

 소환을 잘못해서 어깨에서 피를 흘리거나, 깁스를 하거나, 독을 마시고 꼬박 일 주일을 토하거나,

 그도 같은 길을 따라가야 했다. 수많은 선례들의 무덤을 향해.

 잠깐 눈을 감으면 십이망성과 나무 그림과 초대칭모형과 무한 차원 입방체 등이 아른거리다 사라진다. 

 암흑물질로 그린 마법진으로 하는 마법만이 흑마법이 아냐. 모든 마법은 본질적으로 흑마법이야.

 예쁜 것들의 신은 우리가 얼마나 아픈지는 좆도 신경쓰지 않아. 진짜 좆도.

[1] 해당 마법진은 주어진 마법진 자체를 소환하는 마법진이다. 김망고. [추상마법진 입문]. 소담-이니시에이티브. Chap 1. 58p.

댓글